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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어떻게 산업국가가 되었나?

안녕하세요

오늘은 펀드관련 이야기는 아니고.....

이것저것 동영상을 보다보니 아주 흥미로운 내용의 동영상을 하나 보게되어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몇 일 전에 한번 소개해드렸던 홍춘욱박사의 연수영상인데요....

한강의 기적, 전세계적으로 찾아볼 수 없었던 성장을 일궈낸 한국이 산업국가로 발돋움을 할 수 있었던 역사적 사건에 대해 설명을 하네요.

재미있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영상을 활자화시키다보니 구어체입니다. 감안해서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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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8년차 이코노미스트 홍춘욱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한국은 어떻게 선진국 또는 산업국가가 되었는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본주의 제도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착취적 제도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생각외로 굉장히 많죠.

가장 대표적인 나라들, 우리가 이렇게만 한번 생각을 해보더라도 필리핀이 벌써 떠오르는 나라에 들어갈거고요...

인도네시아도 역시 포용적 제도라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시는 분들 많을겁니다.

 

제가 왜 자꾸 이 두나라 이야기를 하냐 하면, 이 두나라가 바로 토지개혁의 실패로 인해 빈곤의 악순환에 빠진 대표적인 나라가 아니냐라는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 국가들입니다.

중국계 여러 이민자들이라고 불리는 다양한 민족세력들이 경제의 지배력을 나누어 가지는 그런 세상에서는 제대로 된 경제 발전들이 이루어지기 어렵지 않냐라는 지적들을 많이 하게 됩니다.

, 포용적인 제도가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한테 교육과 투자, 성취의 기회가 골고루 돌아갈 수 있는 기회.. 균등의 사회가 만들어지는게 일단 포용적 사회의 가장 기본 아니겠어요?

하층에 존재하고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상층으로 올라설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줄 수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말로만의 기회균등이 아닌 실질적 기회균등이 필요해요.

근데 그게 한국은 가능했던게 바로 미군정에 의한 토지개혁이었습니다.

 

한국의 토지개혁은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볼 수 있고, 이일을 주도했던 사람이 바로 라데진스키입니다.

이 사람은 우크라이나 출신의 사람으로서 1919년부터 22년 사이에 벌어졌던 러시아의 적백내전, 그러니까 러시아의 소비에트세력과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에 벌어진 내전과정에서 어떻게 해서 자기 고향 우크라이나 지역이 적군, 다시 말해 소련, 소비에트 세력에게 넘어가게 되는걸 잘 살펴봤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농민들이 가지고 있는 토지에 대한 집착을 무시해선 안된다.

, 토지개혁이라는 것이 겉보기에는 공산주의적인 정책으로 비쳐서 우파의 정치인들이라던가 지도자들이 굉장히 혐오하지만, 사실은 우파의 세력들 또는 시장경제의 미래들을 위해서는 토지 그 자체에 대한 농민들의 집착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토지를 부여함으로써 오히려 공산주의를 쫓아버릴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된다라는 주장을 펼침으로써 실제로 한국에 있던 미군정, 그리고 일본에 있던 맥아더 군정이 모두 토지개혁을 시행하게 되는, 그래서 한국, 대만, 일본 이 세나라가 1950년 되기전에 토지개혁을 마무리한 나라들입니다.

그리고, 이 세나라만이 아시아지역에 있는 유일은 아니구요... 거의 몇 안되는 산업국가에 속하죠.

물론 최근 들어서서 중국이 산업국가의 대열에 뛰어들기 위해 노력합니다만 적어도 일본, 대만, 한국이라는 Top 3에 비한다면 아직 격차가 굉장히 큰데, 그 역사적 배경이 바로 토지개혁이었다라는걸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토지개혁으로 인해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가?

바로 농업 생산성의 비약적인 개선이 있었다는겁니다.

사람들은 소작을 지으면서 지내고 있는 동안에는 이 땅에 대해서 비료를 한다든가 새로운 농작물, 새로운 농기계들을 투입한다는가 하는 여러 가지 투자와 기술집약적인 생산이라는게 사실상 어려웠어요.

왜냐하면 지주가 언제 자기 땅을 뺏을지 모르는데다가 만에 하나 실수하는 경우, 자기는 여기서 더 밑바닥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그런 여건에 처해있다는 공포가 있었기 때문에 투자를 안했습니다.

지주들 같은 경우는 자기 땅 소작인들에게 빌려주고 더 나아가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을 이용해서 고리대금업을 하는게 훨씬 더 나은 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농업 생산성의 향상을 위해서,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 발전적 투자 이런거 필요가 없었죠.

그렇기 때문에 지주-소작 관계가 있는 나라는 빈곤의 악순환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고, 그 대표적인 지역들이 앞서 말씀드렸던 남아시아의 그 비옥한 토양을 가진 몇 나라들이 되겠습니다.

 

우리 경제는 전체 인구의 90% 이상이 농민으로 구성된 나라인데, 그 농업의 생산성이 올라갔다라는건 곧 산업발달의 기회를 잡게 됐다라는 이야기로 연결될 수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난 다음에 산업발달의 기반을 받게 됐을 때 또 우리정부는, 바로 제조업 육성에 성공하게 됩니다.

제조업 육성에 우리나라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두가지였던 것 같아요.

첫 번째는 농지개혁

농업개혁 속에서 농민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여력이 생기고 자녀를 교육시킬 수 있게 되며 더 나아가 생산성이 향상되다 보니 농촌 지역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필요가 없어지니까, 즉 농촌 지역에 있던 젊은 노동력들이 도시로 이동해 일자리를 잡으려 들고 이 열망에 찬, 성공에 대한 열망에 찬 젊은이들이 도시에 몰려들 때 거기에 일자리를 줘야 될 수 있는 산업을 육성해야 된다는 필요성을 느꼈고, 이 어마어마한 자본의 대부분을 어디서 가져왔죠?

, 바로 미국의 원조 지원 등, 그리고 관세 등을 통해서 조달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경제는 어떻게 보면 냉전의 혜택을 받은 나라였다라고 볼 수도 있는거죠.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서 우리나라 정부가 이것만으로 끝내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강력한 인센티브를 기업가들에게 제공했습니다.

어떤 인센티브를 제공했는가? 바로 저금리였습니다.

시장에서의 사채금리 혹은 계주가 운영하고 있는 여러 사금융의 대출금리들이 30%에서 높을땐 50% 가까이까지 올라가고 있던, 대단히 돈이 부족하던 시대에 실제로 수출금융 관련되서는 10% 미만의 이자로 돈을 빌려줬다는겁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려서 수출하겠다고 사업을 하면, 이 사람이 또 기술과 근로자들을 모을 수 있는 조직의 능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사업에 나서서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죠.

물론 수출하겠다고 돈 받아놓고서 제대로 기업을 경영하지 못하고 돈을 빼돌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럴땐 어떤 일이 있었죠? 바로 산업합리화 조치라는게 있었다.

,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나라 정부는 어떤걸 했냐면 채찍과 당근을 잘 휘두르는 나라에 속한거죠.

, 저금리, 그리고 해외에서 가져와 있는 여러 차관 같은 당근을 적절하게 휘두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내 공급과잉 문제가 생기고, 경쟁력들이 담보되지 않는다 생각되면 지체없이 개입해서 회사의 문을 닫게 만들거나 인수시켜버리는, 지금 그 사례에 나와있는 것처럼 조선이라든가, 해운 같은 산업뿐만 아니라 수많은 산업들이 산업합리화 조치의 대상이 되어서 눈물을 흘리며 문을 닫았던 사례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결국 규율이 있는 경제성장의 전략이 농지개혁으로 인해 발전된 어떤 거대한 노동자, 교육받은 노동자의 그룹과 합쳐진 것이 결국 한국 산업 발전의 초석을 놨고 경제성장의 길을 닦았다라고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본내용은 2023년 5월 11일 보내드렸던, 소식지 본문입니다.